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서재가 있다.
또한 출입구로 홍살문과 내삼문, 외삼문이 남아 있다. 연산향교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5성위를 모셨다. 그리고 동무에는 송조(宋朝) 2현(賢)과 동국 9현, 서무에 송조 2현과 동국 9현 등 모두 5성 22현으로 27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이며 동재, 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제향일은 음력 2월 8일, 7월 13일이다.
연산향교는 창건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였다. 향교의 중수 사실은 명륜당에 걸려 있는 여러 기의 현판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교궁중수기(校宮重修記)」를 보면 군수로 산임한 구범서(具範書)가 훼철된 향교를 복구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고 담장, 동·서재, 내·외삼문 등을 복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연산향교가 언제 중수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를 가름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수기에 경자(庚子)와 신축(辛丑)이라는 간지가 있어 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군수 구범서에 의해 8개월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이후에, 일제강점기 때와 광복 이후에도 중수가 있었다. 「연산향교중수기(連山鄕校重修記)」를 보면 당시에는 군청(郡廳)의 보조와 향교의 임원, 지방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여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최근까지 중수가 진행된 사항을 살펴보면, 1976년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85년 명륜당이 개축되었으며, 1988년 문묘정을 복원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연산향교의 중수는 조선 중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향은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지내며, 현재 연산향교는 충청남도에서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또한 향교에는 역대 향교 임원들에 대해 기록한 문서인 「재임안」을 비롯하여 「선생안」, 「청금록」 등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고, 중수기·보수기·개축기 등 여러 현판들이 남아 있다.
향교의 임원으로는 전교와 여러 명의 장의가 있고, 제향 등 향교의 대소사 행사가 있을 때에는 연사·벌곡·양촌·부적 지역의 유림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계와 하계로 나누어 충효교실과 청년유도회를 중심으로 지역 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